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상대를 정확하게 논박하는 법: 토론의 기술
    血가되는 片鱗들.. 2009. 4. 16. 08:03
    • 경제토론 상대를 정확하게 논박하는 법: 토론의 기술 [159]
    • 매화향 매화향님프로필이미지
    • 번호 618570 | 2009.04.15 IP 123.243.***.158
    • 조회 14117 주소복사
    아고라를 포함한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 집니다. 이러한 현상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토론이 생산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토론에 임하는 마음 가짐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평가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합니다.

    오늘은 이 문제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먼저 토론에 임하는 마음 가짐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고,  토론과 관련된 논리적 검증 절차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에 관해서는 모두 다루기가 조금 버겁습니다. 나중에 '책 읽는 방법의 세부 독서' 과정에 대해 설명 드리면서 논리학에 대해 세부적으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토론에 대해 잘못된 통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토론을 대결 내지 승부를 가르는 과정으로 봅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토론은 어떤 생산성을 목표로 삼습니다. 양자, 또는 다자간에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통합합으로서 나은 결론을 얻어내는 과정입니다. 결국 토론은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낳은 방법이나 결론을 얻어내는 과정이고, 개인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고 보완하는 계기가 되는 셈니다.

    따라서 토론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개인이 적절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지 않고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만한 마음도 금물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내가 언제나 옳다"라든지, "나는 무엇이나 다 알고 있다"는 식의 마음 자세를 가지고는 절대 좋은 토론을 할 수 없습니다.

    토론은 배우는 과정입니다. 배움은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찻잔에 차가 가득차 있으면 새로운 차를 부어도 흘러 넘치게 됩니다. 마음을 비우고 고요해지는 것, 이것이 토론에 임하는 기본 자세입니다.

    혹여 토론이 승부라고 하더라도 마음을 비우는 자세는 중요합니다. 생사를 다투는 검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기술은 기껏해야 몸에 잘 익은 것 2-3개면 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오만한 검객은 서두르다가 패배합니다. 상대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검객은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패배하게 됩니다. 마음을 지배해야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육체는 정신의 도구에 불과하니까요. 토론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음을 비워내지 않으면 상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고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습니다.

    정성껏 차를 한 잔 마시는 마음으로 상대의 글이나 말을 읽고 들어 주는 자세, 이것이 토론의 기본입니다.

    논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길게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중에 논리학에 관한 개론서들이 제법 나와 있으니까요. 여기에서는 개괄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 보겠습니다. 나머지는 책 읽는 법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자세히 다루지요.

    상대를 평가할 때 대략 세 가지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애매성, 정합성, 적합성을 고려하는 것이지요.

    애매성이라는 것은 언어의 한계에서 오는 문제입니다. 사실은 정확히 말하면 사용된 단어나 구의 애매성과 모호성을 짚어 내는 과정입니다. 여기에서 애매성이란 단어나 구가 하나의 논증 안에서 두 세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쓰이는 경우입니다. 첫 번째 명제에서 쓰이는 단어의 의미가 두 번째 명제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면, 그리고 두 명제가 논증에서 소전제와 대전제를 구성하는 식으로 연관이 되어 있다면 결론이 틀릴 것은 불보듯이 뻔합니다.

    모호성은 하나의 단어나 구의 의미가 너무 커서 의미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결국 논증의 의미 자체를 파악하기 힘들게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사용하는 단어에 감정적인 사태를 덧씌워 사용하는 겁니다. '좌파' 같은 단어나 '신자유주의'같은 단어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단어들에 우리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을 투영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너는 좌파야'라는 말 자체가 공격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좌파라는 말은 어떤 태도나 관점을 가르키는 가치 중립적인 단어입니다.

    상대가 애매한 단어나 어구를 사용할 때, 그 의미를 되물어서 하나의 정의를 확정한 다음 각 명제에서 그 단어를 같은 의미로 사용해서 재진술하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상대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알게 됩니다.

    정합성의 문제를 찾는다는 것은 논리적인 구조의 타당성을 검사하는 과정입니다. 가정과 전제와 결론들을 찾아서 그것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입니다.

    가정에는 사실 가정, 혹은 서술 가정과 가치 가정이 있습니다. 사실 가정은 어떠한 것이 존재한다는 기본으로 삼는 태도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구의 자전이 중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그 사람은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고 있는 겁니다. 이런 경우 잘못된 가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됩니다. 이 경우에는 지구가 자전하고 있지 않다는 다른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상대의 주장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집니다.

    다른 가정의 종류는 가치 가정입니다. 보통 신념적 태도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진보주의나 보수주의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사실 이러한 가치 가정은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아직까지의 정설입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김광수 교수님이 쓰신 '논리와 비판적 사고' 같은 책에서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몇 가지 해외 논문에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는 논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메타 윤리학적 문제이고 합의에, 적어도 아직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메타 윤리학의 문제라기 보다 일반 윤리학의 문제로 보입니다. 행위 평가과정이 포함될 수도 있기 때문인데 제가 뭐라할 주제는 아닙니다. 아무튼 현재까지는 가치 가정에 대해서는 반론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가치 가정을 포함하는 주장이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측면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가정 자체는 문제 삼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전제를 찾는다는 말은 결론의 이유를 찾는 과정입니다. 이유와 결론은 튼실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타당하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오류'에 대한 다소 긴 논의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유와 결론을 제대로 찾기만 해도 대강 헛점이 있는지 없는 지는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달린다면, 움직이는 것이다. 그는 움직인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그는 달리고 있다"라는 구조를 가진 글이 있다면 우리는 쉽게 이 글의 논증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움직인다고 해서 반드시 달리는 것은 아닙니다. 걷는 방법도 있고 기는 방법도 있고 그러니까요. 논리학에서는 '후건 긍정의 오류'라고 합니다만, 저는 오류론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방식은 결론을 찾은 다음 거꾸로 '다른 타당한 이유가 있는 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논리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대응 가설을 찾는 것과 논증의 오류를 찾는 것은 다르다'라고 논박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현실적으로는 비슷한 기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골치 아픈 오류가 있는데, 잘못된 유비추론이 그것입니다. 두 가지 이상을 비교하여 논증하는 방식에서 생기는 문제인데, 이 문제는 적합성의 문제와 정합성의 문제에 둘 다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비교하는 두 대상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분류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결론이 둘 사이의 유사성에 기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반론을 제시할 때에는 두 대상 사이의 유사성이 없다든지, 둘 사이의 유사성이 결론과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적합성의 문제를 논거로 사용된 자료가 정확하고 믿을 만한 것인지 묻는 겁니다. 특히 통계나 수치화된 자료는 쉽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는데 주의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 대강 표본의 넓이가 충분한가, 측정방식이 편파적이지는 않은가, 그에 대한 다른 자료는 없는가 등 두 가지 질문을 해보면 됩니다. 물론 더 복잡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전문적인 연구가들이 아니면 일상에서 사용하기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책 읽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경제 자료를 해독에 관해 다룰 때, 좀 더 이야기 하기는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전에 모 보수 인터넷 사이트에 '여론 조사 결과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이 40% 이상이다'라는 주장이 게재된 적이 있는데, 잘 살펴 보면 표본이 잘못되어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낮 시간 대에 가정에 전화를 해서 설문조사를 할 경우 설문에 응답하게 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고연령층과 같은 보수 정당 지지율이 높을 것 같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권에 대해 거부감이 높은 30-40대는 모두 직장에 있을 겁니다. 이 경우에는 같은 시기의 다른 여론 조사 결과를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 됩니다.

    적합성의 문제는 통계외에도 증거나 증언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증거나 증인이 신뢰도가 있는지, 또 다른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자료나 다른 증언은 없는지 살펴 보면 됩니다.  증거는 사실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찾아서 확인하면 되고 증인이 믿을 수 없는 경우에는 왜 믿을 수 없는지를 적시하면 됩니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잘못하면  검증하는 쪽이 '인신공격', 혹은 '의도의 확장' 등의 다른 오류들에 빠질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증언에 대해서는 제가 말하고 있는 '검증과정'을 통해서 증언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래 책을 한 권써야되는 상황인데, 요약을 하려니까 불충해지는 설명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인간성에 관련된 겁니다. 겸손함, 상대에 대한 존중, 객관적인 태도 이런 것들 말입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논박 자체가 천박해집니다. 글을 통해서도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인격을 볼 수 있고 컴플렉스를 읽을 수 있습니다. 논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된 사람이 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