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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룡능선
    나를 부르는 숲 2021. 9. 6. 14:56

    준비는 비장하다.
    시작부터 알콜이 등장하고 수면제가 날아다니고 위장을 울리는 매콤한 김밥과 한껏 거칠어진 버스의 타이어 마찰소리..
    등등이 순간순간을 장식하고 드뎌 을씨년스런 새벽공기와 함께 안락한 버스에서 부림을 당한다.

     

    부산하다.
    장비를 챙기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늘상 그렇듯 시작은 어수선하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군상들로 모여진 이곳은

    더욱더 어수선하다.
    누구부턴지 모르지만 하나둘씩 걷기 시작한다.

    일주문을 지나 깜깜한 밤길을 저벅저벅 걸어나가는 발자욱소리가 힘차다.

    보이지 않는 종아리에선 벌써 긴장이 감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콤한 첫키스의 추억..

    더운 여름날 간간이 흘러가는 구름사이로 반딧불같은 별들이 쏟아지던 그 밤

    사랑하는 그녀와 나누었던 첫키스의 비밀을 알고있는 그 별들은 이 새벽에도 그 자리를 온전히 지키고있다.

    다행히 날씨는 행운쪽인 듯하다.

     

    버리는 카드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는 무의미하다.

    지하 깊숙히 갱도를 내려가는 광부들의 행진같았던 랜턴들의 불빛은 비선대에서 부터 선발대들을 싣고 떠나고

    우리는 잠시 숨을 돌린다.

     

    이제 시작이다.

    첫발부터 깍아지른 돌계단

    먼저 올라간 분들의 불빛이 내 정수리에서 왔다갔다한다. 세상에 이런 급경사를 본 기억이 없다.

    깜깜한 밤이라 다행이지 벌건 대낮이였다면 저 계단이 쏟아지지않을까 걱정하며 올라야할 정도다. 

    거친 숨소리와 흐르는 땀을 진정시키고자 잠시 쉴 틈을 찾지만 그런 여유로운 자리하나 내어주지 않을만큼 인정이 박한 길을 오~쉣 오~쉣.. 뻑킹 도그베이비를 찾아가며 오르고 또 오른다.

    오손도손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담을 나누며 걷고 싶었지만 산은 몇 안되는 비조인원조차 갈라놓고야만다.

     

    어는때 쯤이였을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빗방울이 투둑투둑한다.

    방금 전 그 별빛들은 미끼였나보다. 

    시원한 기분에 이정도 비는 맞아줘야지했는데 도를 넘네 ㅠㅠ
    비옷들을 걸치고 우산도펼치고
    이젠 익숙한

    아.. 이러면 나가린데.. 를 또 씨부리면서 그래도 간다. 갈길은 가야지 어떻게 온 설악인데~
    몇몇 분들이 이런 비에 공룡은 무의미하다라고 애써 우리 귀에까지 들리게 나부랑거리면서 빠꾸를 한다.

    쳇.. 되돌아갈려면 조용히 갈 것이지

     

    여명이 밝아온다.

    서둘러가던 선발대도 일출은 못볼 듯하다. 거짓말 좀 보태서 내 맘도 아쉽다. ㅎ

    가파른 돌계단 길이 끝나갈 즈음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훑으며 가는 중에

    익숙한 두 얼굴

    윤식이와 지영이가 비옷을 걸치고 축축한 모습이지만 얼굴만은 해맑게 인사를 한다.

    좀 넋두리도하고 다리쉼도하고싶었지만 날씨관계로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를 뜬다.

    마등령 2.7키로 남았다.

    아쉬운대로 짙은 안개사이로 언뜻언뜻 속살을 비추인다.

    새색시 속치마마냥 부끄럽고 감칠맛나게시리... 

    이거라도 놓칠세라 눈들이 바쁘다.

    정상은 까마득하고

    오아시스같은 이정표는 감감무소식이고 긴급구조용 말뚝에대고 한풀이 중

    해발이 어쩌니 곧 다 와간다는 둥 왜 SK는 안터지냐는 둥

    여긴 SK도 터지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고 딱 애매하게 내리는 비로 더이상 사진질은 접고

    다 온듯하면서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않는 마등령으로~

    초입보다 한결 수월해진

    설악에 이런 길도 있나 싶은 푹신한 숲길을 오른다.

     

    완전 장터다

    마등령 삼거리인가..

    비에 젖어 활기라곤 찾아보기 힘든 여러무리의 사람들이 제각각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다.

    엄습해오는 한기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화기가 없는 마른 음식들을 오로지 칼로리만 생각하고 삼킨다.

    우리도 여기서 뭘 먹었는데 뭘 먹었지...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로인하여 게눈 감추듯 먹고 배낭을 다시 추스리는데

    많이 뒤쳐진 줄 알았던 호정이 재영이형 령이가 올라선다.

     

    공룡가야지!!
    특유의 당찬목소리로 악악대는 호정이도 힘들어하는 몸상태는 얼굴에서 지워내지 못했는지 입술이 퍼렇다.

    웃움기가 없어진 재영이형

    백팔번뇌가 스쳐지나가는 령이 얼굴 ㅋ

    산을 날아다닌다는 한분은 오르막길에 체끼가 있어 많이 뒤쳐져있다는 소식도 듣는다.

    누군가 챙겨야하는데.. 

    살짝 걱정스러움을 뒤로하고 공룡능선 쪽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좀 미안했다.

    공룡이 끝날 즈음 후미조는 백담사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는 연락이왔다.

    많이 아쉽겠지만 다행이다.

    산은 정상 코앞에서도 상태가 좋지않으면 하산해야하는 게 원칙이라 배웠다. 

     

    이젠 우리가 후미다.

    드뎌 공룡을 맞이한다.

    비는 멎었지만 아직도 잔뼈하나 시원하게 보여주지않는 날씨를 애석해하며

    조망은 포기한다.

    그래도 지금 걷고 있는 이길이 공룡능선이 아닌 건 아니지않나..

    즐겁게 신나게 가자~

     

    마등령에서부터안가.. 같이 합류하신 미나누나와 세열형님

    목포미녀 순영이누나, 깨방정 행숙이, 인생은 알콜이다 현주 그리고 약빨 제대로 받고있는 나

    가슴 딱 펴고
    꿈에 그리던

    그토록 고대하던 그 길에 들어선다.

    먼근석이라는데.. 부럽다 ㅋ

     

    어디가 공룡이대?
    희운각부터가 공룡이래요~~

    공룡능선을 걸으면서 나누던 두분의 대화는.. 서너번을 지적했는데도 반복된다.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이 두분의 정체는 공개하지않겠다.

    숨은 1275봉 찾기

    여기서 1275봉 이정표 찾으면 눈썰미 인정!!

     

    배도 슬슬 고파오는데 한무데기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하다.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했는데 먼저 자리를 깔고있던 사람들이 일어설 기미가 없다.

    대충 길을 피해 한쪽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잠깐 휴식

    여기서 마셨나?
    진짜 진짜 그 수많은 맥주맛 중에서 두번째로 기록될 맛이다.

    행숙이가 애지중기 꼼쳐온 조그만 캔하나

    여럿이 나눠먹어야하니 목 좀 축이는 게 다였지만 축 쳐진 세포들을 확~깨울만큼 꿀맛이다.

     

    쫄아서 맥주한캔 안들고 온 내가 많이 쪽팔렸다 ㅠㅠ

    이런 길도 있고 저런 길도 있고

    오르막은 올라주고

    내리막은 또 사뿐히 내려가주고 단조롭지않고 이아니 좋은가~

    여기가 포인트라고 먼저 앞서던 순영이누나가 폰 딱 켜들고 서있다.

    앞태 옆태 뒷태들을 일일이 코치해가며 

    운무에 가린 배경이 보일락말락 속을 태우지만 이만한게 어디야하며 마냥 즐겁다.

    누군가 바위위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뭐지 뭐지하면서 후다다닥 네발로 기어 올랐을 때 설악이 아니 공룡이 드뎌 옷을 벗었다.

    이 황홀한 모습에

    나오는 감탄사는

    "야~ 너무 좋다" 이 말 뿐이지만 그 기분을 어찌 표현을 하겠는가말이다..

    안 본 사람들은 내 본 눈을 사시요~

     

    금강산을 가던중이라는 둥 백두산을 가던 중이라는 둥 의견 충돌을 빚었던 울산바위의 순백색 살결과

    하늘인지 바다인지 가슴까지 탁 트이는 속초 앞바다

    여기서 우린 공룡산행 시간의 절반을 보낸 듯하다.

     

    이젠 완연히 개어버린 시원한 하늘과

    살짝은 기미걱정을 해야하는 햇볕이 눈을 부시게하지만

    서서히 종아리와 무릎에 통증이 느껴질 무렵 초췌하기만했던 지금까지의 식사와는 다른 행복한 밥상이 펼쳐진다.

     

    두부김치가 아니고 두부와 김치 ㅋ

    내가 젤 좋아하는 계란말이

    손수 만들었다는 새우전과 대파산적

    먹다남은 김밥

    속이 꽉찬 샌드위치

    빵과 과일

    내 꺼는 꺼내보지도 못할 만큼 진수성찬이다.

    이분들 대단하심

    나 두번째로 쪽팔림

     

    그나마 커피한잔 뜨뜻한게 끓여 대접한 걸로 퉁~~

    좀 스릴있어뵈는 그런 길들이 하나씩 지나쳐갈때마다 공룡이 끝나간다는 게 넘 서운하다.

    거대한 스케일의 공연이 순식간에 끝나버린 듯한..

     

    짧은 여운을 두고 인생을 가르는 마지막 이정표가 딱 나타난다.

    오색에서 대청봉을 찍고 중청 소청을 지나 희운각에 도달하면 나를 시험에 들게하는 이 이정표

    공룡을 갈래 비선대로 갈래..

    난 저 공룡능선은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다.

     

    이젠 내리막이다.

    천불난다는 천불동 계곡

    가보자~

     

    목도 축이고 접었던 스틱도 다시 펴고 무릎보호대도 점검하고 마지막 제3장에 들어선다.

    내리막길은 날라다닌다는 순영이누나땜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랠리를 시작하자마자

    노란옷은 잘 보이지가 않는다 ㅠㅠ

    어찌나 잘 내려가는지.. 뒤따라가는 우리는 무릎에 천불이 난다.

    그렇게 우리는 시린 물에 지친 다리도 풀고

    아름다운 폭포에 설정도 더해가며

    이끼 한점 없이 깨끗한 계곡물에 마음도 담가가며

    비선대에 도착하면 시원한 맥주한잔 확 때려주리라 입맛을 다시며 하산을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혹 비선대에 식당이 없었나...

    김 팍 새서

    쉼없이 그 길로 소공원까지 왔다.

    이 여정의 끝은 역시 파전에 막걸리지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 이날의 여흥을 즐기자고 몰래 작당모의를 하고 마지막 한방울까지 탈탈 털어넣고 일어선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나들이를 나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틈에서

    무사히 이 긴긴 산행을 마무리했구나하는 안도를 한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인생 뭐 있나.. 느낌대로 사는 거지

    라고 애써 쿨한척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누구하나 맘에 짐없는 사람 있겠는가

     

    설악에서 공룡에서 다는 아니더라도 그 중 가장 버리고 싶었던 한가지라도 꼭 버리고왔길바라며

    삶에 생각을 지배당하지말며 

    항상 하고자하는 대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자

    우리에겐 산이 있지않는가 말야

    산행을 앞둔 날

    먹을 것도 챙겨주고 손수 주먹밥도 만들어주고 약들도 꼭 챙겨 어느 때 어느 때 먹으라고

    아낌없는 내조를 보여주었던 동생들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뇨자나 탈것이지 그 나이에 웬 공룡을 타냐고 비아냥 거렸던 그 말에 이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공룡 탄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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