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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 지리산 호랑이, 천왕봉에 서다나를 부르는 숲 2009. 5. 14. 11:59
그의 별명은 '지리산 호랑이'다. 1972년 우리나라 최초로 노고단에서 산장지기 생활을 시작한 이래, 40년 가까이 지리산 지킴이로 살면서 등산객에게 "쓰레기 버리지 말고, 시끄럽게 하지 말고, 불조심하라"고 호통을 치던 무서운 어른이었다. 지리산을 제1호 국립공원으로 만들고, 대피소라는 개념을 도입해 산과 등산객의 안전을 꾀한 것도 다 그의 힘이었다. 함태식 선생(82)은 그야말로 지리산을 지키는 호랑이였다.
하지만 다 옛날이야기다. 함 선생 나이 올해 여든두 살. 보통 사람 걸음으로 4~5시간이면 충분한 중산리에서 천왕봉(1915m)까지 오르는 데 8시간이 넘게 걸렸다. 산에 처음 오르는 어린아이처럼 그는 쉬고, 또 쉬었다. 함 선생은 "내가 부축을 받고 지리산에 오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분하네. 네팔에서도 펄펄 날아다녔는데 말이야. 산장에서 쫓겨난 뒤로 기운이 빠졌어"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지난 4월22일 함 선생은 1988년부터 20년 넘게 생활해온 피아골대피소에서 내려와야 했다. 함 선생이 임차해 관리해오던 피아골대피소의 소유권을 국립공원 측이 경쟁 입찰을 거쳐 제3자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제로 '하산'한 뒤 다시는 천왕봉에 오를 일이 없으리라 여겼다.
5월4일, 그가 다시 천왕봉에 오른 까닭은 지리산 케이블카 때문이다. 환경부의 자연공원법 개정안 입법 예고로 지리산 케이블카(16~18쪽 관련 기사 참조)가 가시화되면서 지리산의 산증인으로서 반대 시위에 나서달라는 주변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함 선생이 가장 최근 천왕봉에 올랐던 건 4년 전, 78세 나이로 지리산 종주에 나선 때였다.
이날 오후 3시27분, 마침내 천왕봉에 지리산 호랑이가 올랐다. 아마도 그의 생애 마지막이 될 것이 분명한 천왕봉 등반이었다.
이오성 기자 /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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